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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1/26 [개말] 열일곱의 순애보 - 01 (2)

[개말] ASYLUM

극히망상 2008/02/16 14:04 |

[proem]

“어쩌면, 그것은 허망일지도 모르죠.”


남자는 그저 웃고있었다. 빈껍데기 마냥,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허하니 히죽 입꼬리를 가볍게 올렸다. 눈을 내리깔고서 손에 쥐어져있는 미지근한, 아마도 자기자신의 손에 의해 차가웠던 것이 조금은 미지근한 감이 드는 와인잔을 흔들며 아직 잠에 덜 깬듯한 와인의 향기를 코끝으로 음미하면서 지난 날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잠을 자는듯 하다 이 와인은. 아직도 그 날의 와인을 음미하는 듯 했던 남자는 어느샌가 조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꿈꿔왔던 환상이 실현되는 순간, 환멸이 되는것을. 아직도 그 날을 떠올리면 우습게도 어리석은 두 녀석이 같이 그렇게하기로 약속이라도 한듯이 떠오르더군요. 추억마저도 그 두 녀석은 함께이니. 정말 우습죠. 하- ...이런 자리에서 저속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게 될줄이야. 세상 마저 우습게 여겨지네요. 이 책을 펴낸 계기를 준, 그 두 녀석이 고맙기도 하고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기도 합니다.”


남자는 여전히 한 손에 쥔 와인잔을 흔들며, 다른 한 손으론 옆에 가만히 놓여져 있는 두툼한 책 한 권을 검지로 가리켰다. 그냥 보기엔 보통의 소설책처럼 보였다. 단순히 사랑을 갈구하는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두꺼워 보였고, 자서전이라 하기엔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그것은 남자의 일생의 일부분과도 같은 귀중한 추억이 담긴 소위 말하자면, 향수 그 자체였다. 남자는 예전의 향기는 그대로 였으나,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 까닭에 제 본모습을 들어내지 못한 와인을 아쉬워 하며 머금고는 목구멍으로 삼키며,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남자는 살짝 긴장한듯 보였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제가 어떻게 해서 저런 무거운 놈 하나를 짠- 하고 내뱉게 되었는지. 우선, 이 책을 내뱉게 해준 장본인인 그 두 녀석들 중에... 한 녀석을 소개해 드리죠. 그 녀석의 이름은 김현중. 한자는 성은 보통 성씨이고, 어질 현, 무거울 중을 씁니다. 그 녀석은 아마 아직도 어느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 있을 겁니다.

자- 여기서, 당신은 내가 왜 이런 얘길 꺼낸건지 무지 궁금할 겁니다. 이름을 알려주면서, 갑자기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리를 하니. 자, 이제 문제 하나를 내드리겠습니다. 지금의 김현중은 어떠한 상태로 있길래 어째서 그 많고도 많은 것들 중에 하필 그것도 병실 중에서도 중환자실이라니. 대충 짐작이 가십니까? 네- 녀석은 병신같이 ‘감금 증후군(locked-in syndrome)’ 이란 병을 가져서 전신이 마비라고 하더군요.”


남자는 자기가 이런 말을 하고도, 웃음이 나오는지 두툼한 책을 가르켰던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애써 새어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남자의 웃음소리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섬뜩하게, 잔인하게 날을 세우며 소리가 더욱 그것을 높여댔다. 중압감. 그는 중압감에 시달려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무엇에 대해 딱히 강요한 적도 없었고, 그런 비슷한 케이스는 전혀 없었으나 그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거침없이 위협하고, 압박해 오는 중압감에 신음했었다.

남자는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어쩐지 지금 이 공간은 남자의 목을 죄는 듯한 느낌을 들게끔 만든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남자는 목표의 분명함을 드러내며 묵직하게 조목조목 음성을 뱉는다.


“아, 딱 하나 마비가 오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남자는 최대한 싱긋 웃어보이며, 자신의 입술을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자랑스럽게 들이내밀며 길고 가느란 검지로 가리켰다. 그리고 남자는 ‘요- 입이라 하더군요.’ 라고 말했다.


“다행인지, 운이 개좆도 좋지 않은건지. 내참나, 목소리도 잃지 않아서 말을 할수있는 건 좋은데. 전신이 마비이다 보니, 입으로 의사소통은 가능하나 나머지는 전부 불가능 하다는 겁니다. 절대. 네버. 평생- 웃길 노릇이죠. 살아있는데, 말도 할수 있는데, 그 나머지는 전부 안된다니.

나 같으면 진작에 안락사 시켜달라해서 차디 찬 밑바닥의 저 세상으로 갔을 테지만, 현중이 그 녀석이 아직도 살아있다네요. 그래서 찾아가서 물어봤지요. 아마 그때 흥분해서 멱살을 쥐고서 말했죠. 왜 아직도 살아 있는거냐고. 어째서 아직도 그렇게 까지 살고 싶은거냐고. 그랬더니 녀석이 이렇게 답하더라구요. 그 한마디가 제대로 멍을 때렸죠. ‘정민이가 내게 돌아올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을 거야’ 라고. 기가 차서 그대로 가볍게 한대 내리꽂았죠. 덕분에 감방 들어갈 뻔 한거 가까스로 빠져 나왔으니.

아, 정민이가 누구냐구요? 제가 앞에서 말해 드렸던거 같은데. 두 녀석 중 하나가 현중. 또 하나가 바로 정민입니다. 네. 이름은 박정민입니다. 현중이 처럼, 보통의 박씨에 바를 정, 백성 민 자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네- 친굽니다. 저도 역시 그 녀석들과 같은 친구구요. 눈물나게, 드럽게 눈물나게 병신같이 바보같은 친구였죠. 하는 짓은 꼭 아줌마 같아선, 말투나 손짓은 얼마나 계집애 같던지. 말을 할때도 중간 중간 삑사리 같은 것 때문에 녀석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 적이 없어요. 계속 웃어대면서, 놀려댔죠.

삑사리 대마왕.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게 녀석을 칭하기도 했죠. 음- 별명은 ‘말’ 입니다. 동물 ‘말’이요. 왜 그렇게 불리는 건지는 보면 금방 알겁니다. 걔가 얼굴이 보통 애들보다 약간 길죽하고 생김새도 비슷해서 그렇게 불립니다. 아마, 말이라고 별명을 지어준건 현중이 일겁니다. 녀석이 워낙 별명을 짓는 걸 좋아해서, 덕분에 저도 사마귀라는 별명이 있죠.

간혹 규리라고 불리기도하고, 규종규라고도 하니. 현중이 녀석 별명은 뭐냐구요? 뭐 딱- 말하자면 김 개나소나 라고, 성격은 개같은데 눈망울이 소처럼 순하고 맑아서. 여하간 겁을 모르는 녀석이였죠. 모험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도전정신이 워낙 불같으니 한번 빠져들면 계속 한곳으로만 파고드는 스타일이거든요.

...모르죠-. 책 내용이 심금을 자극할 만큼 슬픈 건 제탓이 아니죠. 전 겪고 들은 걸 글로서 표현한 것일 뿐이니. 원래 학창시절엔 제가 A형이라 그런지 소심하고 말주변도 없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 심했죠. 그래서 글로 내 마음을 마음껏 표현 해낸거죠. 가끔 생각해요. 내가 이런 능력마저 없었더라면, 지금쯤 무얼하고 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 하하- 이야기가 딴 얘기로 흘러갔군요. 흐음... 아마 녀석들을 만나게 된건 고2 였을거예요. 전 지방 출신이라 혼자서 서울에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죠. 고등학교 입학때 부터 자취생활을 시작해서, 나이를 먹긴해도 서먹서먹해서 처음엔 힘들어서 그냥 포기해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할 정도였으니. 목이 좀 아프군요. 잠시 쉬도록 하죠.”


남자는 씁쓸히 웃으며, 결국 채 다 마시지 못한 와인의 잔을 탁자에 놓고서 수트가 검은색이라 그런지 미세한 먼지들이 가라앉아 있는게 보이는지 상의를 가볍게 손으로 털어내며 자리에 일어났다. 앞부분은 이렇게 마무리 되는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아쉽긴 하지만, 녹음기의 재생을 멈추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찌이잉- 하고 머리가 울렸지만, 프로정신이다 보니 벌써부터 저릿한 기분이 온몸으로 느껴지는게 들었다.


-

[conclusion or confusion]

인터뷰를 잠시 멈추고나서, 수첩에 적은 것을 훑어보고 확인을 하다 갑자기 구름과자가 생각나서 지금하고 있는 것을 마칠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적당히 자리를 잡아 한대 빨려고 자세를 잡으려니 재킷 주머니에서 진동이 왔다. 방해꾼이다.

생각 같아선 그대로 방치하려고 했지만, 지금 안 받으면 나에게 전화를 건 상대방이 육두문자를 거칠게 내뱉어낼 것을 알기에 액정은 보지도 않고 통화키를 눌르고 귀에댔다. 역시나 예상대로 상대방은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허영생. 상대방의 이름은 허영생. 그는 나의 든든한 선배 역할을 해주면서, 초등학교 동창을 떠올리 듯 친구같은 편한 사람이다. 하는 짓도 꼭 애같아서 자꾸 보게되면 자기 얼굴 닳는다며 얼굴 감상값 내놓으라 하면서 터프하게 등짝을 때리는 사람이다.

때리는 손맛이 어찌나 아프던지, 눈물이 나올 정도다. 생김새 만으로 사람의 성격과 힘을 미리 정해놓는 것은 정말 바보 짓이라는 걸 멋지게 깨닫게 해준 의인이다.


“아무래도, 그 사람 과거에 뭔가 있긴 했나봐? 그렇게 쉴틈 없이 말하는 걸 보면. 너도 그렇잖아. 진행하는 것도 서툴어선 앞으로 어떻게 해먹으면서 살아가려고- 쯔쯧. 근데근데, 그 남자 실물 보니까 어때? 소문대로 매너남?”

“역시, 나이가 있으신 분이라 그런지 중후한 분위기를 마구마구 품어대던데요? 말할때마다 포스가 있으니. 친절하시긴 합니다. ...뭐, 선배는 그런 말 들어봤자 실제의 모습을 중요시 하시니-. 얼굴은 제대로 연예인 뺨 후려칠 정도로 뿅가게 잘 생기셨습니다. 아주~ 잘 생기셨더라구요. 선배- 선배 이상형이 김규종이라면서요- ...또 아니라고 빼시는 건 아니죠?”


순간 뜨끔 했는지, 선배가 말이 없다. 제대로 정곡을 찌른건가.


“시,시끄러! 나 지금 SS501 컴백에 앞서, 밀착 취재때문에 바쁘니까 나중에 올데이롱으로 담소나 갖자고 알겠지 착한후배야? 어어- 이봐! 너 뭐하는 새끼야! 당장 저리 안 꺼져?!... 아,미안 나 급해서 미치겠다. 끊어- ”


그 뒤로 선배는 뚝- 끊어버렸다. 정말 많이 바쁘긴 하나보다. 여하간 금년엔 가수들이 대거로 나오니까. 쉴틈 없이 바쁘긴 하겠군.

겨우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맛을 느껴보려 했더니만, 누군가 옆에서 내 어깰 툭툭 친다. 그게 괜히 기분이 나빠서 인상을 쓰며 돌아보니 아까 그 남자가 와인잔을 건낸다. 근데 그 모습이 남자인 내가봐도 지독히도 멋있어보여서 내눈을 잠시 의심하기도했다.

분명 잘생기긴 했어도 약간의 아저씨삘이 나는 남자였는데. 와인잔을 받으면서도 응? 뭐지 하고 갸웃했으나, 남자는 들으라는 듯이 무표정하게 답했다.


“디켄터로 다시 한거라 괜찮을 겁니다.”

“...예? 저기 이건 왜.”

“그 두 녀석들하고 같이 즐겨 마셨던 와인입니다. 뭐 인터뷰라 해도 그 당시의 느낌을 살려서 하시는 편이 좋을 듯 해서 준겁니다.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아, 그러세요?”


이상한 남자다. 분명 이 남자는 이상하다. 받은 와인잔을 그대로 쥐고만 있을수는 없어서 눈을 꽉 감고 한꺼번에 다 마셔버렸다. 내가 알기론 와인은 코로 향을 음미하면서, 혀로 맛을 느끼며 여유를 느끼며 마시는 걸로 아는데.

아니 그보다 그렇게 해야 와인의 매력을 제대로 느낀다고 하는데. 근데 이미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린 와인은 생각보다 과일맛이 풍부했고, 그 특유의 향과 달콤함이 혀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게 와인의 매력이라는 건가? 처음 와인을 마실땐 그냥 소주와 비슷한 맛의 술인 줄 알고 넘겨버렸는데 오늘에서야 와인의 매력을 알게된다. 정말... 매혹이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고품격.

곧 다시 인터뷰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했고 빠진 것은 없나 이것저것 확인 하며 멈춰놓은 녹음기를 다시 재생시켰다. 아, 또 다시 저릿해지는 기분과 함께 흥분된다. 이 남자는 무슨 과거를 가졌길래 이렇게 눈빛이 달라지나.


“아마, 고2 여름 방학 때 였을겁니다. 그 날은 기상청에서 알려준 예보와는 다르게 비가 제멋대로 오는 날이였어요. 다행히 저는 날마다 우산을 가방에 넣고 다녀서 젖을 일은 없었죠. 우선 학원을 다니고 있었으니까 가방은 꼭 가지고 다녔죠. 수업을 마치고 나서 집으로 가는 길에 놀이터에서 누군가 있더라구요. 그네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멍하니 있어서, 그게 많이 추워보였어요. 그래서 다가갔죠. 후드티를 입고 있더군요. 다 젖은 상태였지만, 분명 연한 연두색의 옷이였어요. 축축하게 젖은게 꼭 물에 빠진 생쥐꼴이라 딱해서

더욱 가까이 다가가서 비를 더이상 맞지 않게 우산으로 막아주었죠. 그랬더니 그제야 고개를 들고 저를 보더라구요. 빤히 쳐다봤어요. 그러면서 창백한 얼굴빛으로 힘없이 그저 웃어보이는게... 울었던건지 많이 힘겨워 보였습니다. 누가 위로 좀 해줬으면 하는 눈으로 저를 쳐다봐요. 그래서 물어봤죠. ‘너, 지금 집에 갈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재워줘’란 말만 하고 계속 쳐다보기만 하더군요. 웃겼죠.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자기한테 다짜고짜 재워달란 말을 하니.

그래도 그대로 내버려두면 정말 큰일이라도 날것 같아서 일으켜서 부축해준 채로 제집으로 데려가서 샤워하게끔 만들어주고, 마침 남아있던 스프까지 만들어 주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덥석 껴안아 대더니 나긋한 목소리로 키스해달라했어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키스해오더라구요. 서슴없이 입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느낌에 당황해서 밀쳐내버리고 가스 불을 껐죠. 남자주제 두근두근거리게 만드는데 순간, 이렇게 내가 심장이 뛰는걸 느껴봤나 생각하게 되더군요.

아, 그게 누구냐구요? 하하... 정민이예요. 밀쳐낸 뒤로 얼른 상처라도 났나 하고 살펴보려는데 그래도 뻗은채로 꿈나라로 갔더군요. 내참 그거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피곤한가 보다하고 대충 이불을 덮어주고 저도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누가 막 흔들어 깨우는데, 뭐지 하고 눈을 뜨니 정민이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어요. 대화를 하면서 알고보니 술에 거하게 취해서 해버린거라 하니 많이 웃겼죠. 처음엔 그냥 웃음으로 넘겼는데, 그게 자꾸 시간이 지나가면서 다른 쪽으로 가더라구요. 간단하게 말하면 짝사랑 감정? 이 심장이 미쳤나 하고 욕을 수십번은 뱉었던거 같네요.

그리고 정민의 소개로 현중이를 알게 되었어요. 정민이가 말하길 현중이는 4차원이니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듣자마자 뭔소린가 했죠. 근데, 알겠더라구요. 생각하는 사고가 엉뚱한 것도 있고 말하는 말투도 꼭 요즘 흔히 말하는 ...초딩아시죠? 꼭 그렇더라구요. 꼭 정민이를 자기 곁에 두고두고 보려는 고집센 꼬마애를 보는 것같았어요. 항상 행동하는 태도가, 정민이가 있으면 무조건 바보같이 실실 웃어댔는데. 정민이 말고도 다른 애가 보이기만 하면 얼굴을 아주 구겨대는게, 아 저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어요.”


아까보다도 더 긴장된 얼굴로 남자는 와인잔을 기울였고, 손이 떨리는 것이 보이기에 나는 남자에게 긴장을 풀라는 의미로 가방에 넣어뒀던 초코렛을 미소를 지으며 건냈다. 남자는 고맙다며 끄덕이곤 그것을 받아서 곧바로 포장지를 뜯고 입으로 넣었다. 지금 넣은 초코렛은 많이 달것이다. 아마도 아주 많이. 괴로울 만큼.

남자는 초코렛을 다 먹고 난뒤, 정말로 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술술 말을 풀어댔다. 그런 남자의 표정을 보며 나는.. 이거 좋아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갑자기 머리속에 박혀있던 프로정신이 뚝- 하고 아래아래로 연거푸 추락한다. 이런, 이러면 정말 안돼는데.


“... 그렇게 해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알게 됐죠. 놀랐기 보단, 분했죠. 어째서 내가 아니고 김현중이라는 건지. 울컥하고 화가나서 쥐고 있었던 핸드폰을 던져버릴려고 그랬는데. 그때 생각지도 못한 전화가 오더라구요. 받아보니 정민이아버지가 지금 정민이 어딨냐고 묻더라구요. 뒷세계의 알아주는 조직의 회장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죠. 이미 정민이는 현중하고 같이 떠난 상태라 어딘지도 모르고... 둘이 그렇게라도 해서 행복하고 싶다면 그렇게 되길 생각했죠. 뭐, 결국 별말도 드리지 못한채로 통화는 끝나고.

그 뒤로는 조용히 살았죠. 한 몇년 흘렀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가 왔더라구요. 액정을 보니 정민이였어요. 그래서 얼른 하던 것을 멈추고 받았죠. 그 동안 무얼하고 지냈는지. 그 동안 아무일 없이 지냈는지. 그 동안 많이 행복해하며 지냈는지. 하, 근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흐느끼고 있었어요. 계속 울더라구요. 말도 없이 훌쩍거리며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 하고 울리더라구요. 역시 뭔일이 벌어지긴 했구나-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넌 왜 우는 거냐’ 고 묻는데, 정민이가 한참을 말없이 울다가 현중이가 사고를 당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물었죠. ‘넌 지금 어디있는 거냐’ 고. 분명 현중이가 사고난걸 봤을테니 병실에 있는 걸로 알고 길을 알려달라는 의미로 물어본거였죠.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집안에 갇혀서 평생 밖으로 못 나간다’ 는 말만 하더니 끊더군요.”


어느새 남자가 말해온 내용들이 열페이지는 족히 넘어섰고, 그만큼이나 써서 그런건지 손이 저렸고 마비가 온것 마냥 감각이 둔해졌다. 근데, 이 남자 자신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아까 초반에 A형 어쩌구하는 것도 그렇지만, 별명이 사마귀에 규리, 규종규라니 지금 이 남자는 혹시 환상이란 착각 속에서 잠시 정신을 놓아둔건가. 분명히 이 남자는 내가 알기론 ‘ASYLUM’ 저자가 김현중이라는 걸로 알고있는데. 정말 착각 속에 빠져 살고있는건가.


“근데, ...죄송하지만 당신은 김현중씨 잖아요. 지금껏 말해왔던 것을 정리해 보자면, 당신은 김현중씨 맞잖아요. 지금 당신은 책속의 김규종이 아니예요. 작가 김현중씨잖아요.”


남자가 나의 말에 표정을 매우 일그러뜨렸다. 혹시 내가 한 말이 듣기 싫다는 의사일까. 이 남자는.


“그리고, 여기 책속의 주인공은 김현중, 박정민이 아닌 김규종, 박정민으로 쓰여져있는데 잘못 말하신거 아닌가요? 내용도 그렇구요. 이 책에선 김규종과 박정민이 우연히 뉴욕에서 만나게 되면서 다시금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거 아닙니까?”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더이상 할말이 없어 가만히 있는듯 싶더니 거침없이 육두문자를 내 얼굴앞에 내뱉기 시작한다. 내가 알고 있는 온갖 욕들과 함께 별 이상한 신조어쪽으로 속한 욕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온다.

아, 이 남자 정말 불쌍하다. 그러니까 계속 정신병원에 쳐박혀 있는거잖아. 박정민씨가 정말 울고도 남을 사람이네. 이 남자는... 아, 자꾸만 의욕이 떨어진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구나. 이 남자는. 정민아. 네가 좋아했던 그 김현중은 전혀 찾아 볼수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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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링과는 아무 의미없는 소설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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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는일이야.”
“...겁쟁이구나, 형.”

형준은 그 누구보다도 현중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현중의 동생이란 위치에 있어서 그런거겠지만, 그래도 현중의 속사정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종종 현중의 방에 들릴때 마다 심심찮게 보였던 책상에 놓여져 있던 낡았지만 소중히 다뤘던듯 깨끗한 민무늬 노트. 아무렇게 펼쳐봐도 '박정민' 의 이름이 애정 어린 낙서마냥 담겨져 있었다. 그게 너무 애달퍼서 형준은 현중에게 말을 꺼내고 싶었다.

그 말이 날카로워서 현중에게 깊이 상처를 주게 할지라도. 그래도 내심 형준은 말할 기회를 찾았다. 얼른 풀어헤치고 싶었다. 계속 두기엔 김현중이 형준에게선 힘겨워 보였으니까. 아무리 제 나이보다 한 살 많은 형이라고 해도 그래도 아직은 어리기만한 형이니까.

“형한테 이런말하기 뭐한데, ...그래도 나 진짜 형보면 답답해버린다? 형이 먼저 정민이 형 좋아했잖아. 규종이 형이야 정민이 형이 고백하면서 정민이 형 한테서 느꼈던 호감이 더 커진 것 뿐이잖아. ...형은 분하지도 않아? 그냥 이렇게 살거야? 정민이 형하고 이미 친한친구니까 그 기준의 선에서 정민이 형을 바보같이 바라만보고 있을거냐고?”
“...김형준. 너 원래 오지랖 넓었던 얘였냐?”

현중은 더 이상 듣기 싫었다. 미간을 좁히며 아까부터 목을 조여오는 듯한 교복 타이를 풀어버렸다. 지금 형준이 자신에게 하는 소리는 한 귀로 흘러버릴 자질구레한말 처럼 들려왔다. 같잖은 소리였다. 시선을 피하려고 내리 깔았던 눈을 들어 형준을 보았다. 제앞에 보이는 그는 한 살 어린 동생 김형준이다.

한 살 아래 동생이라고 무시를 밥먹듯이 했던 그 시간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현중 앞에 그는 방긋방긋 웃으며 인형처럼 희고 작고 어렸던 이미지는 보이지 않았고, 늠름한 사내의 모습을 한 대한민국의 한 건아의 모습으로 비춰져 있었다.

아, 나이를 먹으면 변하긴 변하구나. 현중은 픽- 바람빠지는 소리로 웃었다. 형준의 진지한 눈빛이 저도 모르게 웃긴 모양이다.

“형이 내가 형의 인생에서 끼어들지 않게 잘 처신좀 해보던가. 난 형의 든든한 동생이라고- 이렇게 형 생각해주는 동생 흔하지 않다? 그렇게 계속 혼자 참고있지는마.”

지켜보는 내가 더 힘들어. 퉁명스레 말하는 형준에 그저 말없이 안아주며 다독이는 현중이다. 보이지 않았지만 현중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형준은 아주 조금은 감탄했다. 잠깐 이지만 이게 ‘형’이란 사람의 품이란거구나 하고. 생각보다 넓고 듬직한 가슴팍. 괜히 심술을 부려 가슴팍을 밀쳐내고 주먹을 쥐고 퍽 때리니 예상 밖의 말이 들린다.

미안. 형준이 놀란 반응을 보인다. 분명 형준의 귀가 잘못된게 아니라면, 현중의 입에서 나온말이다. 형준은 순간 웃음이 났다. 자신에게 미안하다고한 말이 너무나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생전 처음 들어본 소리인 것처럼 멍했다. 황당했다. 그도 그럴것이 평소 자신에게 잘못을 해도 눈꼽 만큼도 반성의 기미 마저 없었던 현중이였다. 오히려 지나칠정도로 자신을 더 괴롭히거나, 더 심하게 굴었으니.

그 까닭에 형준은 현중이 지금 어디 아프냐고 묻고싶을 정도였다. 마음 같아선 현중의 이마에 손을 얹고 열이 있나 묻고 싶을정도. 현중 역시 자기자신이 그렇게 말하고도 믿겨지지 않는듯 멋쩍은지 괜히 머릴 긁적이며 웃는다.

어쩐지 바보스러움이 물씬나는 웃음소리. 아, 이래서 형을 형이라 할수 밖에 없는거구나. 형준은 속으로 중얼이며 긍정의 표시로 머릴 끄덕였다.

“...등신. 바보같은 짓이나 하지마. 나이값 좀 해달라고.”
“그럼, 이제 괜찮은거지?”

현중이 씨익 웃으며 형준에게 착 달라붙어선 소같이 까맣고 큰 눈망울을 반짝인다. 형준의 표정이 급격히 굳는다. 생각 같아선 주먹을 날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이게 어디 형이란 작자의 모습이던가. 기가찼다. 용서를 구하는 태도치곤, 건방져보여 아까 긍정했던 것을 취소하듯 도리질한다. 같은 피가 흐르는 형일텐데, 알다가도 모를 인간이라며 형준은 생각했다.

“됐네- 이 바보 멍청이 또라이 단순무식! 이제부터 현중 형 같은 형은 나에겐 없어!”

현중을 세게 밀쳐내곤, 현중의 먹던 햄버거를 빼앗아 덥석 물고 우적거렸다. 그 바람에 으헝헝 거리며 바보스러움의 극치를 달렸던 웃음은 어디로 가고 눈빛이 사납게 변한채 이를 갈며 성난 황소마냥 콧평수를 늘렸다. 흡사 매섭게 으르릉거리는 한 마리의 집개를 연상케했다. 한 지붕 아래에 산 만큼 질리도록 본 형준은 현중의 코앞에 검지들곤 좌우로 흔들며 비웃었지만. 형준에겐 지금 김현중은 지나가는 한 마리의 똥개 밖에 안보였다. 아무렴 그 이상으로 보일리가 있으려나. 혀끝을 찼다.

“...어쭈, 이것봐라? 이새끼가 나한테 맞아야 정신 제대로 차리지? 너 한대 맞자.”
“허- 내가 겁먹을줄 알고? 쳐봐- 쳐. 엄마한테 이를거야-”

통화 내용이 좋았는지, 일이라도 보고 온건지 얼굴이 싱글벙글로 급 활짝핀 영생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화장실에서 나온다. 그가 나오자 마자 보게된 첫 광경은 현중과 형준의 유치찬란 말싸움의 현장이였지만. 괜스레 기분이 팍 아래로 낙하한다.

저놈의 자식들은 툭하면 싸우고 그러냐. 네가 어쩌니 저쩌니 해대며 막무가내로 거칠게 말싸움을 해대는 모습을 보니 순간 자기가 없는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나 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뭐야. 심각한 내용으로 싸우는건가? 영생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서 둘의 치고받는 싸움을 가운데에 끼어 제지한다.

이 새끼들은 누가 끼어들지 않으면 그대로지? 이자식들 때문에 내 잘생긴 얼굴에 주름 생긴다니까!. 어우- 내팔자야. 영생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중얼이곤, 그들을 쳐다봤다.

“뭐야 니들. 나 없는 사이에 무슨일 있었냐? 우리 형준이 얼굴은 왜그래? 김현중 넌 또 애를 패려고해!! 니가 그러고도 형이란 새끼냐!”

영생의 등장에 형준은 그저 반가운듯 영생을 불렀다. 현중이 뭐라 욕을 하던 말던 아랑곳 하지 않은채로 무시하며. 영생이형~ 간드러지게 말하며 영생에게 달라 붙으니 그 모습은 가히 이산가족의 상봉한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형- 왜 이제 온거야. 영생 마저 형준을 제품에 얼싸 안으며 동참했다. 미안 내가 늦었지? 저 망나니 새끼로 부터 널 두고오는게 아니였는데...

감동에 북받쳐 우는 연기를 하며 형준의 머릴 쓰다듬었다. 그리곤 곧 바로 영생이 잘하는 짓이다- 라 비아냥대며 힘껏 현중을 째렸다. 그제서야 현중은 인기척을 느끼고는 심드렁히 어- 왔냐 하고 간략히 묻는다.

“개상놈의 새끼..시궁창에 빠져 씻어도 그 냄새 풀풀 날 새끼! 넌 어째 그 모양이냐!”
“...무슨일로 전화하셨대냐?”
“흥- 외식 하겠다고 당장 오라하신다.”
“오~ 외식~”

현중, 형준이 동시에 부럽다는 듯이 반응을 하자, 영생이 괜히 팔짱을 끼며 콧대를 세웠다. 훗, 이 엉아가 좀 많이 잘났거든- 거만한 말투로 우쭐된 모습이 마치 8살짜리 초등학교 꼬마애가 반장에 뽑힌 마냥. 하늘을 날듯이 기분 좋아보이는 모습과 매치되어서 그 모습이 너무나도 어울리고 우스워 풋- 하고 웃음보가 터진 형준이다.

아- 영생 형 정말 귀엽다. 멱살 쥐고 견주어보고 싶을 정도로 귀엽네. 형준의 입과 눈은 웃고있었지만, 한 손은 이미 주먹이 쥐어진채로 있었다. 영생은 그런 형준을 모르는채 대뜸 낄낄거리니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 뭐야. 왜 웃어대. 어느샌가 현중이 영생의 뒤로가 숨어선 두 검지 손가락을 든다.

길게 잘 뻗은 검지 손가락을 영생의 뒷머리 위에 대곤 악마의 뿔로 연출하다가 좀 더 다가가 영생의 머리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더니 윽! 냄새- 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덕분에 숨이 넘어갈듯 웃어대는 형준에 영생은 눈치를 채 형준을 뚫어지듯이 노려본다. 너- 내가 웃겨서 웃은거지? 야- 말해봐 얌마! 좋은 말로할때 얼른 불어라. 아님 아주 찍소리 나지 못하게 해주지. 하며 지그시 웃곤 형준의 멱살을 세게 움켜 잡는다. 영생이 씩씩거리며 화를내자 형준이 도리질 하며 봐달라는 표정을 지으며 여전히 뒤에있을 현중을 보려던 찰나, 현중은 이미 얍삽하게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감자튀김을 오물거렸다.

그런 현중을 어이없이 노려보며, 빼도 박도 못하게된 형준은 억울하다며 울상을 짓는다. 영생이 형- 내말 좀 들어봐. 나 진짜 아무 잘못한거 없거든? 아- 진짜 형! 나 못 믿어? 나 아니라고. 정말이야 믿어줘! 김현중이 그랬다고! 형준은 어차피 맞는거라면 까짓거 이판사판이다 하며 눈을 부릅뜬채 현중이 그랬다하니, 현중이 ‘형’ 으로 칭하지 않고 이름 그대로 말하는걸 듣고는 온갖 인상을 구기며 벌떡 일어나선 다짜고짜 형준의 없는 멱살을 부여잡아 칩떠본다.
 
뭐? 김형준 이자식이 어따 형한테 뭐? 김현중? 야- 너 이새끼가 동생이라 봐주니까 아예 반말까지 하지? 어쭈- 너. 많이 컸다? 형한테 한번 제대로 맞아봐야 정신차리지? 너 임마 너, 엄마타령 하지마. 하면 죽는다 진짜. 어금니 꽉 깨물어- 평소 어눌하던 말투가 물흐르듯 거침없이 내뱉여 지면서 사납게 쳐다보니,  형준은 지레 겁을 먹으며 곁눈으로 빠져나갈 틈을 요리조리보며 찾으려다 우연히 유리 벽 밖으로 부터 통해 보이는 낯익은 얼굴에 형준은 얼이 빠진듯이 넋을 놓는다. 그걸 또 현중이 얼핏 눈치 채곤 형준의 얼굴에 한손을 들어 흔들어 본다. 무반응한 표정. 현중은 살짝 미간을 구겼지만, 아까전의 화는 가라앉은지 이성을 되찾았다.

형준은 무언가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듯 영상 필름을 싹둑 잘라버리는 현상에 제 음성이, 제 몸짓이 나오질 않았다. 이미 눈으로 통해서 본 그것을 뇌에서 정보로 인식하여 언어화된지는 한참이나 지났으나, 형준은 말이 없었다.
 
꿀먹은 벙어리처럼 굳게 닫힌 입. 그러다 곧 끼익대는 문소리에 형준의 시선은 출입문으로 쏠렸다. 형준이 봤던 그는 역시 잘못보지 않았다. 분명 아까 자신이 본게 헛것이 아니었음을 알게되었으니 말을해야 한다고 입을 열었으나 괜스레 목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형준이다. 언어화된 것이 겨우 입 밖으로 오른다.

“...정민이 형?”

현중이 형준에게 말을 하려던 찰나, 형준의 입에서 생각도 못한 이름이 나오자 영생은 어리둥절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살짝 톤을 높였다.

뭐? 누구? 정민이? 영생은 정민을 보려는 마음에 얼른 고갤 돌렸고, 현중은 미동없이 굳은 얼굴을 하며 그저 우두커니 있었다. 곧 영생이 정민을 알아보고선 웃더니 곧바로 정민을 불렀고 그걸 안 정민이 샐쭉 웃으며 다가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반달모양으로 이쁘게 휜 눈꼬리와 싱그럽고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더욱 박정민의 온화한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셈이지만. 깔끔한 앞머리가 자꾸만 속눈썹 아래로 닿자 가만히 있어도 눈에 자극이 되는지 눈을 찡그리며 주변에 작은 잔금을 그렸다. 눈앞에 거슬리는 앞머리를 옆으로 쏠리게 검지로 살짝 젖히는 것 또한 잊지 않고서. 정민은 입을 열어 살가운 어조로 반색했다.

“오~ 영생아! 현중이도 있었네? 인형준! 반갑다~ 오늘 무슨 날인가봐 이렇게 넷이 모일줄이야.”

정민은 살포시 웃으며 영생의 옆자리에 앉아 인사를 하다가 미처 예상치 못한 만남에 잊고 있었던 목적을 다시금 띠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걸 또 형준이 눈치를 챘는지 일어선 정민의 손목을 붙잡아 자리에 앉혔고 형준이 자리에 일어섰다. 그것이 마치 제 의무인 마냥 당당하게 일어선다.

형준의 돌발 행동에 정민은 놀랄수 밖에 없었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붉고 도톰한 입술이 살짝 나온 채 형준을 알수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런 표정의 정민이 귀여운지 형준은 싱긋 웃으며 자기가 갔다 올테니 자리에 앉아 편히 기다리고 있으라 말하고서 카운터로 향했다. 정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쟤가 왜이러나?’ 한 표정을 지었고 영생은 그런 형준을 보며 혀끝만 찼다. 눈이 가려운지 검지로 주변을 벅벅 긁적이다 눈에 보이는 감자 튀김을 집어 우물거리며 아까부터 아무말 없는 현중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제눈에 보이는 현중은 정민에게 단 한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괜히 애꿎은 빨대만 질겅질겅 물어 뜯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몹시 불편해서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하는것으로 영생에겐 그렇게 보였다.

병신 쪼다새끼 김현중. 진짜 불쌍하게만 보인다. 영생은 그리 생각하며 한심하단 눈초리로 고갤 저으며 현중에게 한 소리 하려고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무심코 정민의 옆구리 사이에 보이는 큰 곰인형에 멈칫한다. 괜스레 영생은 힐긋 현중으로 눈을 돌리니 그의 시선이 정민이 아닌, 큰 곰인형으로 가있음을 알수 있었다. 현중과 정민을 번갈아 보며 한입 남은 햄버거를 집어 우적거리며 옆에 앉아있는 정민에게 삐딱하게 물었다.

“그나저나... 김규종은 안 보이네? 너 두고 어디 갔나봐? 이렇게 오랜만에 너 혼자 있는 걸 보니.”

정민이 규종과 사귀기 시작 하면서 정민은 현중보다 규종과 함께 다니는 시간이 많아졌고 사이가 사이이다 보니 그야말로 연인의 모습이였다. 규종은 될수있는 한 정민을 항상 자기 곁에 두었고 정민 역시 규종을 아무말 없이 따랐다. 근데 지금 정민의 옆에 항시 있었던 규종이 안 보이니 영생은 그걸 놓치지 않고 파고 들었다.

그 말에 그제야 현중이 반응하면서 정민의 옆에 있던 큰 곰인형으로 머물었던 시선이 어느새 정민에게로 향했다. 정민은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기며 여느 때 처럼 밝은 미소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응~ 규종인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급히 갔어.”
“흐응- 그 인형 처음 본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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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말] 열일곱의 순애보


“현중아, 나 왠지 어쩌면 규종이 좋아하는 거 같다.”
“......축하한다. 박정민.”

김현중에게 있어서 열여덟의 가을은, 생각보다 많이 춥지도 시원하지도 않았지만 그저 덜하지만은 않은 계절이였다. 그리고 김현중이란 세 글자의 명칭을 가진 소년은, 어느새 자기가 자각도 못한 사이에 많은 것을 깨달은 것 처럼 그의 현실이 까만 눈동자를 통해 비추어졌다. 초점없이 텅빈 까만 동공. 그는 멍하니 서있는 채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아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흐르는 눈물을 감춘채로 있을뿐. 가슴 한쪽에 파고든 시큰함을 느낀다. 김현중의 열여덟의 가을은 약간 잔혹했다.

-

“현중아, 나 먼저 가도 되지? 규종이가 너 싫어하는거 알잖아. 다음에 뭐 맛있는거라도 사줄게. 미안-”

종례가 끝나자마자 벌써부터 시끌벅적한 교실안. 이미 방과후의 교실은 아이들이 반 이상은 빠져나가 그렇지 않아도 추웠던 교실은 아이들의 온기가 사라진 채로 있어서 더욱 냉기가 어렸다. 현중은 졸렸던지 하품을 줄기차게 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뒷목이 쑤시는지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한손으로 목을 주무른다. 걸리적 거리는 좁쌀만한 눈꼽은 새끼 손가락으로 대충 띄곤, 기지개를 곧게 피는데 제 앞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아까 부터 후각으로 전해지는 알수없는 향긋한 냄새가 현중에게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누구지? 현중은 눈을 내리깔며 평소엔 잘 쓰지도 않던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기 시작한다. 분명 내가 아는 사람중에 하나라면, 이런 체취를 가질 사람을 대략 추측해 보자면. 그래. 녀석일거야. 현중은 생각을 마치고 기지개로 숙였던 고갤 들어보았다. 곧바로 낯익은 얼굴이 보이자 현중의 양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예상했던 얼굴이 맞네. 녀석이야. 현중은 제가 맞췄단 사실에 만족스레 웃는다.

해바라기를 닮아 웃음마저 태양같은 아이. 밝은 웃음을 지낸 아이. 왠지 가까이 하기엔 자신이 검게 물드리게 할것만 같은 순결무구한 아이. 그야말로 순백의 천사. 현중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이며 이내 눈을 마주했다. 그 붉고 도톰한 입술에서 어떤 톤으로 어떤 말투로 말을 하련지.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서있던 소년이 현중과 마주하자 입을 연 한마디는 먼저 간다는 말이였다. 표정이 살짝 굳다가 애써 웃어보인다. 하하. 그래? 그럼 먼저가 내가 계집애도 아니고. 혼자가는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현중이 그렇게 말을 해도 소년은 역시 제가 생각해도 미안 한지 봐달라는듯, 살짝 혀를 내밀며 귀엽게 눈꼬리를 휜다. 애교있게 눈웃음을 짓는 다갈색의 머리를 한 소년. 곧 자리를 뜨면서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하곤 제 교실 앞문으로 향해간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던듯 이내 자기와 같은 또래의 소년에게 다가가 살포시 안겨든다. 품에 안겨든 소년의 이름은 박정민. 정민은 자기를 품에 안았던 또래의 소년에게 싱긋 웃으며 손을 깍지를 낀다. 이어 한폭의 그림마냥 같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현중은 앉은채로 그걸 보면서 씁쓸히 웃을뿐이다.

그런 현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정민은 김현중의 애증이였다. 눈치 백단의 박눈치 박정민이 모를 정도로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품어 온 어수룩한 사랑. 그 뒷면에는 자신의 사랑을 눈치채지 못한 박정민에게 대한 서운함과 미움이 굳고 단단하게 뭉쳐져 비례하고 있었다. 멍하니 정민의 뒷모습만 보며 잔상이 보일 무렵. 옆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툭치는 느낌에 인상을 쓰며 고갤 돌렸다. 그뒤엔 이어폰을 낀채 한 손엔 만화책을 들고있는 영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쪼갠다.

“야- 뭐하냐. 이 횽아가 지금 기분이 날아갈듯 좋아서 너에게 은총을 내리러 왔노라.”
“은총은 얼어죽을. 네가 신이라도 되냐. 귀신이 헤드뱅이하는 소리하고는-”
“어쭈, 할말은 있어가지고는- 있어봐. 내 너에게 은총을 내려주마!”

영생이 빈정대며 한손을 들어 현중의 머리위에 가볍게 놓았다. 어수룩 하지만 은총을 내리려는 손짓들. 마치 중세시대에 왕이 임명을 하는것 처럼 하더니 멈칫한다. 아마 자기가 생각해도 웃긴듯 웃음이 터진모양이다. 낄낄거리는 영생의 자칭 초퀄리티 개그에 현중은 비식웃는다.
영생을 흘낏 보며 장난끼 발동으로 어퍼컷을 날리려는 마냥 주먹을 쥐고 형태만 취한다.
 
예상 밖의 기습에 영생은 놀란듯 동그랗게 눈을 뜬다. 급히 뒤로 물러나더니 찰나, 영생이 자기 손을 들어 현중의 머릴 팍- 하고 마찰음을 냈을 때 손바닥이 제법 붉었다. 네 머리속엔 강철이 뇌를 보호해주냐. 존나 아퍼. 하며 궁시렁 거리더니, 너 원래 정체가 숨겨져있던 국가기밀 비밀병기아냐? 최종병기그녀처럼. 진지하지도 않는 말을 억지로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으며 내뱉으니 돌아오는건 현중의 주먹이다. 이번엔 진짜로 맞을것 같아 재빨리 그 주먹을 두손으로 막아내고는 한 숨 돌리는 영생이다.

“이새끼는 진짜 틈만 나면 주먹 쓰려고 그러네. 너 어디 사람 칠일있냐-”

아까부터 자기를 동네북 마냥 치려는 현중의 태도에 빈정상한듯, 인상을 쓴다. 듣고 있던 아이돌 음악마저 싫증나버린다. 영생은 바지 주머니에 넣어뒀던 MP3를 꺼내 분류모드로 해놓은 상태에서 이내 뉴메탈 음악으로 틀어놓는다. 시작부터 기타 음이 요란하게 들려온다. 음이 약해질 쯤 드럼이 끼어들더니 박자에 맞춰 리듬감 있게 진행된다. 눈앞에서 작은 콘서트라도 펼쳐지듯 급박히 격렬하게 들려오면서 곧 보컬의 잔잔하면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희미한 음악소리에도 들리는지 현중은 잠시 가만있는채로, 영생이 듣고 있던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기울여 듣는다. 한 동안 그렇게 듣고 있는걸 보고 영생이 갸웃하며 현중의 어깰 툭- 치면서 뭐하냐고 묻는다. 그제서야 현중은 음악에 심취했던 정신을 차리곤 심드렁하게 다물었던 입을 연다. 나 많이 귀찮다 왜 불렀냐는 시무룩한 표정을 한채.

“음, 짧게 말한다. 너 나 뭐 사준다 한건 맞지?”

현중은 서론이던 본론이던, 결론을 우선적으로 중요시했다. 앞이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되든 끝을 중요했던 현중이기에 그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나오는 말은 당연한 언행이였다. 어느새 현중의 한쪽 입꼬리가 가볍게 당겨지며 씨익 웃는다. 현중의 행동에 김빠지는 듯 아까보다 더 빈정상해지는 영생이다. 자신을 놀리는것도 아닌데도.

“......이자식! 은총이라고 했지! 신의 은총이라고!”
“그럼 빙고네- 으헝헝.”

삐죽거리는 영생을 본체만체하며 현중은 내일있는 과제를 확인한다. 음- 2개 있구나. 책상에 널브러진 책들과 쓰레기를 적당히 치우고선, 얼른 가자며 영생을 곁부축하며 재촉한다. 영생이 여전히 입술만 내민채 뾰로통하니 있자, 현중은 그새 또 장난끼가 발동했는지 영생의 코에 자신의 검지를 가져다 대더니 스위치 취급하듯 꾹 눌러버린다. 영략히 돼지코가 되어버린 영생의 오뚝한 코. 영생의 코를 보자 풋- 웃으면서 꿀꿀 울어보라한다. 으헝헝. 천진난만한 현중의 웃음소리가 교실안에서 잔잔히 퍼진다.

영생은 그런 현중의 쓰잘떼기없는 장난에 현중이 눈엣가시라도 되보이는것 마냥 째려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탄스런 한숨. 그냥 아주 주먹이 운다는 소리.

“새끼- 계집애마냥 째려보지말고 이제 먹으러 가자. 네가 사준다며-.”
“아씨, 어쩌다가 너같은 새끼를 만나서 이렇게 맘 고생하냐. 아- 난 정말 천사라니까.”
“...누가 네놈의 숙제를 도와줘서 지금 이렇게 여유롭게 쉬고있는건 잊었나보지?”

순간, 웬만큼 화를 내지 않던 영생이 손을 불끈거리며 뚫어질것 처럼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그 만큼 현중의 도발이 강했단 소리지만. 현중은 입에 꽃을 문듯 실실 웃기만 했다. 그 놈의 바보 웃음 으헝헝.

“개자식, 그놈의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유들유들하게 말하는거 그거 제대로 남 열받게 하는건 아냐?”
“오- 쏘리쏘리. 내가 워낙 그쪽으로 잘 돌아가는 머리라서 더 말할수 있는데, 뭐 두말하기 없는거다.”
“내가 널 친구로 둔게 내 잘못이다. 으이구!”
“으헝헝-”

*

학교 후문앞 주변 건너편에 자릴잡고 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섰다. 제법 밖의 날씨가 쌀쌀한지 움츠렸던 어깨를 떨더니 핀다. 아- 춥다. 작게 중얼이던 현중은 얼른 시야 내에 보이는 자리부터 덥석 잡아서 앉았다. 말도없이 꺼림칙하지 않게 앉아있는 현중에 영생은 눈을 찡그리며 뻔뻔하다는듯 머릴 세게 후려친다. 그 덕에 현중은 아프다며 버럭대나 더 맞으라며 현중의 머리쪽으로 향하는 영생의 손바닥.

위치를 파악한 다음 영생은 카운터에가서 붙어져있는 메뉴들을 요리조리 살펴본다. 신메뉴가 나왔나 생각하면서. 대략 3~4분이 흘러도 고갤 기웃거리며 오질 않는 영생에 슬슬 짜증이 밀려오는지  빨리 골라서 오라며 부추기는 현중이다. 그 소리에 영생은 현중쪽으로 시선을 돌려 오른손을 척-하고 들더니 반듯하게 중지를 들며 째린다. 작고 이쁜 입술은 정확히 또박또박 입닥치라는 입모양.

영생은 다시 메뉴판에 집중하다 이제야 골랐는지 얼른 알바생에게 주문을 하곤 계산을 한다. 곧 해당 메뉴가 나오자 받아들고 자리로 가니 난데없이 현중옆에 그의 동생 형준이 떡 하니 앉아있었다. 그야말로 불청객. 그는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은듯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영생을 맞이했다. 영생의 더욱 일그러진 표정은 안중에도 없는듯. 안녕 형아~ 쭌이 기억 못하는거 아니지? 라며. 덧으로 데스노트의 라이토를 연상케하는 트레이드 마크 썩은 미소와 함께.

“얜 언제 온거냐? 아니 그보다 여긴 어떻게 왔대? ... 김현중. 네가 알려줬지?”
“-마! 내가 알려주기는 개뿔. 잘나신 동생님께서 서점에서 문제집 몇권 사다가 내가 보여서 이쪽으로 왔다네. 절대 내가 부른거 아니다.”
“형- 많이 부담갖게 하진 않을게요. 으히히히~ 뭐, 빌붙는다고 매몰차게 대하시는건 아니지?”
“누가 형제 아니라고 할까봐...... 형제끼리 아주~ 잘하는 짓이다. 야- 니 콜라 니가 알아서 챙겨.”

영생은 얇은 한숨을 뱉으며, 방금전 계산하고 가방에 넣어뒀던 지갑을 꺼내 열어선 냅다 5천원을 꺼내 형준의 손에 쥐어준다. 곧 영생이 카운터로 손짓하니 형준은 그저 거저먹는 것에 좋은지 헤헤 웃으며 얼른 카운터로 가버린다. 영생은 그런 형준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보며 혀끝을 차더니, 어째 하는짓이 너랑 판박이냐. 같은 피는 역시 다르군. 하며 햄버거를 이미 한입 베어먹고 있었던 현중에게 하는 핀잔을 준다. 하지만 현중은 아무 반응없이 그저 끄덕이기만 한채 다시 한입. 그런 현중이 밉살스러운듯 손바닥으로 등짝을 짝- 소리나게 때리지만, 묵묵히 먹고 있는 현중을 보며 고갤 가로 젓는다.

형준이가 벌써 열일곱이라니... 세월 참 빠르네, 라며 영생이 작게 중얼거린다. 그걸 또 현중이 듣고서 수달이 옹알이하냐고 놀리지만. 잠시 회상에 젖어었던듯 영생이 갑작스레 내뱉는다.

쟤 보니까 작년 요맘 때 생각난다. 너 기억 안나? 그 때 그 누구냐 8반에 있잖아 김규종 그 자식. 그때만 해도 너 그자식하고 친했잖아. 죽이 제대로 잘 맞아서 자신의 반쪽인 마냥 잘 다녔다며? 아- 새끼 너 그때 진짜 그 지랄하는거 제대로 웃겼다고. 아, 박정민 걔랑도 어울렸다고했지? 음.. 뭐였지? ‘트리플 에스’ 였나? 네녀석이 간지나는 명칭이 없다면 안된다면서 지었던 거잖냐. 그놈의 네이밍센스 하고는-. 영생이 크하하 웃으면서 내용이 끊어지지 않게 다시 이어갔다. 짓고선 곧 바로 학교 방방곡곡 누비면서 홍보네 뭐네하면서 결국은 축제까지 나갔지? ‘트리플 에스’ 란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아니 그보다 색다르니까 끌렸나보다. 니네 얼굴도 꽤 됐으니까~ 으하하.

한참 말을하다 말고 영생은 살짝 목에 갈증이 났는지 제 앞에 컵을 집고서 빨대로 통해서 쭈욱 마셔댄다. 형준은 이미 계산을 한뒤 의자에 앉아 감자튀김을 오물거리며 영생이 하고 있었던 얘길 눈을 번쩍이며 조용히 듣고 있었다. 톡톡쏘는 탄산 특유의 짜릿함과 시원스레 넘어가는 목넘김에 기분이 좋은듯 웃으며 영생은 다시 조곤조곤 이어간다.

축제때 그룹 이름치고는 어울리지 않게 개그로 승부를 걸어 1등을 먹었다던지, 수학여행때 베개싸움하다 한명이 잘못 맞아서 병원에 실려간 얘기, 공학인 옆학교의 여학생들한테 발렌타인데이때 초콜렛을 받으려고 담벼락을 넘다가 바지가 찢어져서 쪽팔린 일 등등 영생은 쉬지 않고 말을 했고, 그걸 형준은 재밌는지 웃어대며 듣고 있었다. 정작 그 얘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현중은 대꾸없이 묵묵히 먹고 있을뿐.

“와- 진짜 재밌게들 논다. 학교에서 뭐라 안해?”
“몰라, 이제 거이 포기한 분위긴데 뭐. 안그러냐 현중아?”
“... 허영생. 너 언제 부터 수다맨이 됐었냐. 듣고있는 내가 귀아퍼- 먹는데 신경 거슬리잖아.”

현중은 귀 주변을 만지작거리며 귀가 아프다는 시늉을 하면서 감자튀김을 우물우물거렸다. 그런 그의 동생인 형준은 아무리 자기 형이라해도 야박해 보여서 마침 현중이 집으려했던 감자튀김이 레이더망에 포착되자 얼른 뺏어서 자기 입안에 넣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승리의 브이. 그런 형준을 말없이 쳐다보다 현중은 머리통을 한대 때리더니 다시 먹기 시작한다.

“와- 때리는거봐! 영생 형 현중 형이 막 때려! 형이라고 동생이라고 함부로 때리는거봐”
“김현중 너 동생 함부로 대하는게 아냐~ 우리 이쁜 형준이가 때릴대가 어딨다고 때려.”

어느새 의기투합 된 두사람을 보며 현중은 별 대수롭지 않은듯 코웃음을 친다.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한번 째리더니 이제 막 콜라를 입에댄다. 영생은 그런 현중을 보며 형준에게 저런 형 밑에서 고생이라며 불쌍하단 눈빛으로 감싸 안아주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찰나, 바지주머니 속에서 요동치는 핸드폰 진동에 짜증이 묻어나는 소리로 중얼거린다. 젠장, 누구야. 액정에 뜬 명칭을 보는 영생의 얼굴에서 반색이 없는걸로 보아 집번호인듯. 영생은 잠시 화장실에 좀 간다며 얼른 올테니 기다리라한다. 영생이 가는걸 지켜보면서 현중을 한번 보더니 형준은 들리지 않게 귀에 대고 넌지시 말한다. 마치 다른사람이 들어선 안될 내용인것 처럼. 아까전 들떠있었던 분위기와는 달리 사뭇 사늘하게 느껴진다.

“아까 정민이 형 봤어.”
“......”
“규종이 형이랑 같이있더라.”
“......”
“모닝글로리에 있더라고. 사거리쪽에 국민은행 맞은편.”
“......”
“...형?”

표정변화 없이 듣고 있었던 현중은 마치 자신에게 고자질이라도 하듯 말하는 형준을 보며 피식웃는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살짝 놀란 형준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분명 듣게된다면 현중은 자릴뜨고 곧바로 정민에게 달려갔을법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현중이니. 현중은 감자튀김을 다 먹고는 콜라 한모금 마셨다. 여태 닫혀있던 입에서 낮은 톤의 목소리로 읊조린다. 현중의 까만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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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곰지영 2008/01/27 20:5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음...=__=...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도대체 뭘 어떻게 진도를 나가야할 지 나도 모르겠다..

  2. BlogIcon 노시노시 2008/01/27 21:0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나쁜자식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