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말] ASYLUM
극히망상 2008/02/16 14:04 |[proem]
“어쩌면, 그것은 허망일지도 모르죠.”
남자는 그저 웃고있었다. 빈껍데기 마냥,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허하니 히죽 입꼬리를 가볍게 올렸다. 눈을 내리깔고서 손에 쥐어져있는 미지근한, 아마도 자기자신의 손에 의해 차가웠던 것이 조금은 미지근한 감이 드는 와인잔을 흔들며 아직 잠에 덜 깬듯한 와인의 향기를 코끝으로 음미하면서 지난 날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잠을 자는듯 하다 이 와인은. 아직도 그 날의 와인을 음미하는 듯 했던 남자는 어느샌가 조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꿈꿔왔던 환상이 실현되는 순간, 환멸이 되는것을. 아직도 그 날을 떠올리면 우습게도 어리석은 두 녀석이 같이 그렇게하기로 약속이라도 한듯이 떠오르더군요. 추억마저도 그 두 녀석은 함께이니. 정말 우습죠. 하- ...이런 자리에서 저속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게 될줄이야. 세상 마저 우습게 여겨지네요. 이 책을 펴낸 계기를 준, 그 두 녀석이 고맙기도 하고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기도 합니다.”
남자는 여전히 한 손에 쥔 와인잔을 흔들며, 다른 한 손으론 옆에 가만히 놓여져 있는 두툼한 책 한 권을 검지로 가리켰다. 그냥 보기엔 보통의 소설책처럼 보였다. 단순히 사랑을 갈구하는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두꺼워 보였고, 자서전이라 하기엔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그것은 남자의 일생의 일부분과도 같은 귀중한 추억이 담긴 소위 말하자면, 향수 그 자체였다. 남자는 예전의 향기는 그대로 였으나,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 까닭에 제 본모습을 들어내지 못한 와인을 아쉬워 하며 머금고는 목구멍으로 삼키며,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남자는 살짝 긴장한듯 보였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제가 어떻게 해서 저런 무거운 놈 하나를 짠- 하고 내뱉게 되었는지. 우선, 이 책을 내뱉게 해준 장본인인 그 두 녀석들 중에... 한 녀석을 소개해 드리죠. 그 녀석의 이름은 김현중. 한자는 성은 보통 성씨이고, 어질 현, 무거울 중을 씁니다. 그 녀석은 아마 아직도 어느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 있을 겁니다.
자- 여기서, 당신은 내가 왜 이런 얘길 꺼낸건지 무지 궁금할 겁니다. 이름을 알려주면서, 갑자기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리를 하니. 자, 이제 문제 하나를 내드리겠습니다. 지금의 김현중은 어떠한 상태로 있길래 어째서 그 많고도 많은 것들 중에 하필 그것도 병실 중에서도 중환자실이라니. 대충 짐작이 가십니까? 네- 녀석은 병신같이 ‘감금 증후군(locked-in syndrome)’ 이란 병을 가져서 전신이 마비라고 하더군요.”
남자는 자기가 이런 말을 하고도, 웃음이 나오는지 두툼한 책을 가르켰던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애써 새어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남자의 웃음소리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섬뜩하게, 잔인하게 날을 세우며 소리가 더욱 그것을 높여댔다. 중압감. 그는 중압감에 시달려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무엇에 대해 딱히 강요한 적도 없었고, 그런 비슷한 케이스는 전혀 없었으나 그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거침없이 위협하고, 압박해 오는 중압감에 신음했었다.
남자는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어쩐지 지금 이 공간은 남자의 목을 죄는 듯한 느낌을 들게끔 만든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남자는 목표의 분명함을 드러내며 묵직하게 조목조목 음성을 뱉는다.
“아, 딱 하나 마비가 오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남자는 최대한 싱긋 웃어보이며, 자신의 입술을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자랑스럽게 들이내밀며 길고 가느란 검지로 가리켰다. 그리고 남자는 ‘요- 입이라 하더군요.’ 라고 말했다.
“다행인지, 운이 개좆도 좋지 않은건지. 내참나, 목소리도 잃지 않아서 말을 할수있는 건 좋은데. 전신이 마비이다 보니, 입으로 의사소통은 가능하나 나머지는 전부 불가능 하다는 겁니다. 절대. 네버. 평생- 웃길 노릇이죠. 살아있는데, 말도 할수 있는데, 그 나머지는 전부 안된다니.
나 같으면 진작에 안락사 시켜달라해서 차디 찬 밑바닥의 저 세상으로 갔을 테지만, 현중이 그 녀석이 아직도 살아있다네요. 그래서 찾아가서 물어봤지요. 아마 그때 흥분해서 멱살을 쥐고서 말했죠. 왜 아직도 살아 있는거냐고. 어째서 아직도 그렇게 까지 살고 싶은거냐고. 그랬더니 녀석이 이렇게 답하더라구요. 그 한마디가 제대로 멍을 때렸죠. ‘정민이가 내게 돌아올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을 거야’ 라고. 기가 차서 그대로 가볍게 한대 내리꽂았죠. 덕분에 감방 들어갈 뻔 한거 가까스로 빠져 나왔으니.
아, 정민이가 누구냐구요? 제가 앞에서 말해 드렸던거 같은데. 두 녀석 중 하나가 현중. 또 하나가 바로 정민입니다. 네. 이름은 박정민입니다. 현중이 처럼, 보통의 박씨에 바를 정, 백성 민 자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네- 친굽니다. 저도 역시 그 녀석들과 같은 친구구요. 눈물나게, 드럽게 눈물나게 병신같이 바보같은 친구였죠. 하는 짓은 꼭 아줌마 같아선, 말투나 손짓은 얼마나 계집애 같던지. 말을 할때도 중간 중간 삑사리 같은 것 때문에 녀석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 적이 없어요. 계속 웃어대면서, 놀려댔죠.
삑사리 대마왕.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게 녀석을 칭하기도 했죠. 음- 별명은 ‘말’ 입니다. 동물 ‘말’이요. 왜 그렇게 불리는 건지는 보면 금방 알겁니다. 걔가 얼굴이 보통 애들보다 약간 길죽하고 생김새도 비슷해서 그렇게 불립니다. 아마, 말이라고 별명을 지어준건 현중이 일겁니다. 녀석이 워낙 별명을 짓는 걸 좋아해서, 덕분에 저도 사마귀라는 별명이 있죠.
간혹 규리라고 불리기도하고, 규종규라고도 하니. 현중이 녀석 별명은 뭐냐구요? 뭐 딱- 말하자면 김 개나소나 라고, 성격은 개같은데 눈망울이 소처럼 순하고 맑아서. 여하간 겁을 모르는 녀석이였죠. 모험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도전정신이 워낙 불같으니 한번 빠져들면 계속 한곳으로만 파고드는 스타일이거든요.
...모르죠-. 책 내용이 심금을 자극할 만큼 슬픈 건 제탓이 아니죠. 전 겪고 들은 걸 글로서 표현한 것일 뿐이니. 원래 학창시절엔 제가 A형이라 그런지 소심하고 말주변도 없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 심했죠. 그래서 글로 내 마음을 마음껏 표현 해낸거죠. 가끔 생각해요. 내가 이런 능력마저 없었더라면, 지금쯤 무얼하고 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 하하- 이야기가 딴 얘기로 흘러갔군요. 흐음... 아마 녀석들을 만나게 된건 고2 였을거예요. 전 지방 출신이라 혼자서 서울에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죠. 고등학교 입학때 부터 자취생활을 시작해서, 나이를 먹긴해도 서먹서먹해서 처음엔 힘들어서 그냥 포기해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할 정도였으니. 목이 좀 아프군요. 잠시 쉬도록 하죠.”
남자는 씁쓸히 웃으며, 결국 채 다 마시지 못한 와인의 잔을 탁자에 놓고서 수트가 검은색이라 그런지 미세한 먼지들이 가라앉아 있는게 보이는지 상의를 가볍게 손으로 털어내며 자리에 일어났다. 앞부분은 이렇게 마무리 되는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아쉽긴 하지만, 녹음기의 재생을 멈추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찌이잉- 하고 머리가 울렸지만, 프로정신이다 보니 벌써부터 저릿한 기분이 온몸으로 느껴지는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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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lusion or confusion]
인터뷰를 잠시 멈추고나서, 수첩에 적은 것을 훑어보고 확인을 하다 갑자기 구름과자가 생각나서 지금하고 있는 것을 마칠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적당히 자리를 잡아 한대 빨려고 자세를 잡으려니 재킷 주머니에서 진동이 왔다. 방해꾼이다.
생각 같아선 그대로 방치하려고 했지만, 지금 안 받으면 나에게 전화를 건 상대방이 육두문자를 거칠게 내뱉어낼 것을 알기에 액정은 보지도 않고 통화키를 눌르고 귀에댔다. 역시나 예상대로 상대방은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허영생. 상대방의 이름은 허영생. 그는 나의 든든한 선배 역할을 해주면서, 초등학교 동창을 떠올리 듯 친구같은 편한 사람이다. 하는 짓도 꼭 애같아서 자꾸 보게되면 자기 얼굴 닳는다며 얼굴 감상값 내놓으라 하면서 터프하게 등짝을 때리는 사람이다.
때리는 손맛이 어찌나 아프던지, 눈물이 나올 정도다. 생김새 만으로 사람의 성격과 힘을 미리 정해놓는 것은 정말 바보 짓이라는 걸 멋지게 깨닫게 해준 의인이다.
“아무래도, 그 사람 과거에 뭔가 있긴 했나봐? 그렇게 쉴틈 없이 말하는 걸 보면. 너도 그렇잖아. 진행하는 것도 서툴어선 앞으로 어떻게 해먹으면서 살아가려고- 쯔쯧. 근데근데, 그 남자 실물 보니까 어때? 소문대로 매너남?”
“역시, 나이가 있으신 분이라 그런지 중후한 분위기를 마구마구 품어대던데요? 말할때마다 포스가 있으니. 친절하시긴 합니다. ...뭐, 선배는 그런 말 들어봤자 실제의 모습을 중요시 하시니-. 얼굴은 제대로 연예인 뺨 후려칠 정도로 뿅가게 잘 생기셨습니다. 아주~ 잘 생기셨더라구요. 선배- 선배 이상형이 김규종이라면서요- ...또 아니라고 빼시는 건 아니죠?”
순간 뜨끔 했는지, 선배가 말이 없다. 제대로 정곡을 찌른건가.
“시,시끄러! 나 지금 SS501 컴백에 앞서, 밀착 취재때문에 바쁘니까 나중에 올데이롱으로 담소나 갖자고 알겠지 착한후배야? 어어- 이봐! 너 뭐하는 새끼야! 당장 저리 안 꺼져?!... 아,미안 나 급해서 미치겠다. 끊어- ”
그 뒤로 선배는 뚝- 끊어버렸다. 정말 많이 바쁘긴 하나보다. 여하간 금년엔 가수들이 대거로 나오니까. 쉴틈 없이 바쁘긴 하겠군.
겨우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맛을 느껴보려 했더니만, 누군가 옆에서 내 어깰 툭툭 친다. 그게 괜히 기분이 나빠서 인상을 쓰며 돌아보니 아까 그 남자가 와인잔을 건낸다. 근데 그 모습이 남자인 내가봐도 지독히도 멋있어보여서 내눈을 잠시 의심하기도했다.
분명 잘생기긴 했어도 약간의 아저씨삘이 나는 남자였는데. 와인잔을 받으면서도 응? 뭐지 하고 갸웃했으나, 남자는 들으라는 듯이 무표정하게 답했다.
“디켄터로 다시 한거라 괜찮을 겁니다.”
“...예? 저기 이건 왜.”
“그 두 녀석들하고 같이 즐겨 마셨던 와인입니다. 뭐 인터뷰라 해도 그 당시의 느낌을 살려서 하시는 편이 좋을 듯 해서 준겁니다.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아, 그러세요?”
이상한 남자다. 분명 이 남자는 이상하다. 받은 와인잔을 그대로 쥐고만 있을수는 없어서 눈을 꽉 감고 한꺼번에 다 마셔버렸다. 내가 알기론 와인은 코로 향을 음미하면서, 혀로 맛을 느끼며 여유를 느끼며 마시는 걸로 아는데.
아니 그보다 그렇게 해야 와인의 매력을 제대로 느낀다고 하는데. 근데 이미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린 와인은 생각보다 과일맛이 풍부했고, 그 특유의 향과 달콤함이 혀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게 와인의 매력이라는 건가? 처음 와인을 마실땐 그냥 소주와 비슷한 맛의 술인 줄 알고 넘겨버렸는데 오늘에서야 와인의 매력을 알게된다. 정말... 매혹이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고품격.
곧 다시 인터뷰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했고 빠진 것은 없나 이것저것 확인 하며 멈춰놓은 녹음기를 다시 재생시켰다. 아, 또 다시 저릿해지는 기분과 함께 흥분된다. 이 남자는 무슨 과거를 가졌길래 이렇게 눈빛이 달라지나.
“아마, 고2 여름 방학 때 였을겁니다. 그 날은 기상청에서 알려준 예보와는 다르게 비가 제멋대로 오는 날이였어요. 다행히 저는 날마다 우산을 가방에 넣고 다녀서 젖을 일은 없었죠. 우선 학원을 다니고 있었으니까 가방은 꼭 가지고 다녔죠. 수업을 마치고 나서 집으로 가는 길에 놀이터에서 누군가 있더라구요. 그네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멍하니 있어서, 그게 많이 추워보였어요. 그래서 다가갔죠. 후드티를 입고 있더군요. 다 젖은 상태였지만, 분명 연한 연두색의 옷이였어요. 축축하게 젖은게 꼭 물에 빠진 생쥐꼴이라 딱해서
더욱 가까이 다가가서 비를 더이상 맞지 않게 우산으로 막아주었죠. 그랬더니 그제야 고개를 들고 저를 보더라구요. 빤히 쳐다봤어요. 그러면서 창백한 얼굴빛으로 힘없이 그저 웃어보이는게... 울었던건지 많이 힘겨워 보였습니다. 누가 위로 좀 해줬으면 하는 눈으로 저를 쳐다봐요. 그래서 물어봤죠. ‘너, 지금 집에 갈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재워줘’란 말만 하고 계속 쳐다보기만 하더군요. 웃겼죠.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자기한테 다짜고짜 재워달란 말을 하니.
그래도 그대로 내버려두면 정말 큰일이라도 날것 같아서 일으켜서 부축해준 채로 제집으로 데려가서 샤워하게끔 만들어주고, 마침 남아있던 스프까지 만들어 주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덥석 껴안아 대더니 나긋한 목소리로 키스해달라했어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키스해오더라구요. 서슴없이 입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느낌에 당황해서 밀쳐내버리고 가스 불을 껐죠. 남자주제 두근두근거리게 만드는데 순간, 이렇게 내가 심장이 뛰는걸 느껴봤나 생각하게 되더군요.
아, 그게 누구냐구요? 하하... 정민이예요. 밀쳐낸 뒤로 얼른 상처라도 났나 하고 살펴보려는데 그래도 뻗은채로 꿈나라로 갔더군요. 내참 그거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피곤한가 보다하고 대충 이불을 덮어주고 저도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누가 막 흔들어 깨우는데, 뭐지 하고 눈을 뜨니 정민이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어요. 대화를 하면서 알고보니 술에 거하게 취해서 해버린거라 하니 많이 웃겼죠. 처음엔 그냥 웃음으로 넘겼는데, 그게 자꾸 시간이 지나가면서 다른 쪽으로 가더라구요. 간단하게 말하면 짝사랑 감정? 이 심장이 미쳤나 하고 욕을 수십번은 뱉었던거 같네요.
그리고 정민의 소개로 현중이를 알게 되었어요. 정민이가 말하길 현중이는 4차원이니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듣자마자 뭔소린가 했죠. 근데, 알겠더라구요. 생각하는 사고가 엉뚱한 것도 있고 말하는 말투도 꼭 요즘 흔히 말하는 ...초딩아시죠? 꼭 그렇더라구요. 꼭 정민이를 자기 곁에 두고두고 보려는 고집센 꼬마애를 보는 것같았어요. 항상 행동하는 태도가, 정민이가 있으면 무조건 바보같이 실실 웃어댔는데. 정민이 말고도 다른 애가 보이기만 하면 얼굴을 아주 구겨대는게, 아 저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어요.”
아까보다도 더 긴장된 얼굴로 남자는 와인잔을 기울였고, 손이 떨리는 것이 보이기에 나는 남자에게 긴장을 풀라는 의미로 가방에 넣어뒀던 초코렛을 미소를 지으며 건냈다. 남자는 고맙다며 끄덕이곤 그것을 받아서 곧바로 포장지를 뜯고 입으로 넣었다. 지금 넣은 초코렛은 많이 달것이다. 아마도 아주 많이. 괴로울 만큼.
남자는 초코렛을 다 먹고 난뒤, 정말로 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술술 말을 풀어댔다. 그런 남자의 표정을 보며 나는.. 이거 좋아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갑자기 머리속에 박혀있던 프로정신이 뚝- 하고 아래아래로 연거푸 추락한다. 이런, 이러면 정말 안돼는데.
“... 그렇게 해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알게 됐죠. 놀랐기 보단, 분했죠. 어째서 내가 아니고 김현중이라는 건지. 울컥하고 화가나서 쥐고 있었던 핸드폰을 던져버릴려고 그랬는데. 그때 생각지도 못한 전화가 오더라구요. 받아보니 정민이아버지가 지금 정민이 어딨냐고 묻더라구요. 뒷세계의 알아주는 조직의 회장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죠. 이미 정민이는 현중하고 같이 떠난 상태라 어딘지도 모르고... 둘이 그렇게라도 해서 행복하고 싶다면 그렇게 되길 생각했죠. 뭐, 결국 별말도 드리지 못한채로 통화는 끝나고.
그 뒤로는 조용히 살았죠. 한 몇년 흘렀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가 왔더라구요. 액정을 보니 정민이였어요. 그래서 얼른 하던 것을 멈추고 받았죠. 그 동안 무얼하고 지냈는지. 그 동안 아무일 없이 지냈는지. 그 동안 많이 행복해하며 지냈는지. 하, 근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흐느끼고 있었어요. 계속 울더라구요. 말도 없이 훌쩍거리며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 하고 울리더라구요. 역시 뭔일이 벌어지긴 했구나-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넌 왜 우는 거냐’ 고 묻는데, 정민이가 한참을 말없이 울다가 현중이가 사고를 당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물었죠. ‘넌 지금 어디있는 거냐’ 고. 분명 현중이가 사고난걸 봤을테니 병실에 있는 걸로 알고 길을 알려달라는 의미로 물어본거였죠.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집안에 갇혀서 평생 밖으로 못 나간다’ 는 말만 하더니 끊더군요.”
어느새 남자가 말해온 내용들이 열페이지는 족히 넘어섰고, 그만큼이나 써서 그런건지 손이 저렸고 마비가 온것 마냥 감각이 둔해졌다. 근데, 이 남자 자신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아까 초반에 A형 어쩌구하는 것도 그렇지만, 별명이 사마귀에 규리, 규종규라니 지금 이 남자는 혹시 환상이란 착각 속에서 잠시 정신을 놓아둔건가. 분명히 이 남자는 내가 알기론 ‘ASYLUM’ 저자가 김현중이라는 걸로 알고있는데. 정말 착각 속에 빠져 살고있는건가.
“근데, ...죄송하지만 당신은 김현중씨 잖아요. 지금껏 말해왔던 것을 정리해 보자면, 당신은 김현중씨 맞잖아요. 지금 당신은 책속의 김규종이 아니예요. 작가 김현중씨잖아요.”
남자가 나의 말에 표정을 매우 일그러뜨렸다. 혹시 내가 한 말이 듣기 싫다는 의사일까. 이 남자는.
“그리고, 여기 책속의 주인공은 김현중, 박정민이 아닌 김규종, 박정민으로 쓰여져있는데 잘못 말하신거 아닌가요? 내용도 그렇구요. 이 책에선 김규종과 박정민이 우연히 뉴욕에서 만나게 되면서 다시금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거 아닙니까?”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더이상 할말이 없어 가만히 있는듯 싶더니 거침없이 육두문자를 내 얼굴앞에 내뱉기 시작한다. 내가 알고 있는 온갖 욕들과 함께 별 이상한 신조어쪽으로 속한 욕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온다.
아, 이 남자 정말 불쌍하다. 그러니까 계속 정신병원에 쳐박혀 있는거잖아. 박정민씨가 정말 울고도 남을 사람이네. 이 남자는... 아, 자꾸만 의욕이 떨어진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구나. 이 남자는. 정민아. 네가 좋아했던 그 김현중은 전혀 찾아 볼수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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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링과는 아무 의미없는 소설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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